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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는 이야기

잊고 지냈던 목소리...

정은임 아나운서...

저랑 동갑이죠...

뭐 동갑이라고 알고 지냈던 사람은 아닙니다...

"나는 너를 아는데, 너는 나를 모르는..."

방송인과 팬의 관계... 뭐 그런거죠...

팬이라고 말하기도 좀 뭐하네요...

무슨 팬이 가끔 방송이나 듣고

그나마도 못들은지 몇년은 더 된거 같으니까요...


1992년부터

일명 "정영음(정은임의 영화음악)"이라 불리우던

MBC FM 프로그램을 오랫동안 진행했던 아나운서 겸 DJ 였습니다.

보수적인 방송권력 입장에서는

너무나 파격적일수밖에 없는 대사들과 진행방식, 음악선곡 때문에

수많은 팬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강제로 프로그램이 종영되기도 하고,

또 팬들의 노력에 힘입어 다시 복귀하기도 했던

대단한 아나운서였습니다.

파격적이기만 한게 아니라

삶의 진솔한 모습을 보여주었기에

그녀의 팬들은

진보적인 성향의 사람들로부터 감수성 예민한 사춘기 소녀들에 이르기까지

아마... 라디오 아나운서로서는 역대 최고의 인기를 누렸을 겁니다.

그녀는

2004년 7월 교통사고를 당해

지난 8월 4일 결국 세상을 떠났습니다.

바빠서... 잠이 많아서...

그녀의 방송을 듣지 못한지 꽤 오래 되었고...

사고를 당한 것도, 세상을 떠난 뒤에야 알게 되었습니다.

참... 아까운 한명의 생명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갑자기 제가 자주 가는 모 홈페이지 게시판에

정은임 아나운서에 관한 글이 올라와 있길래...

저도 한번 끄적여 보았습니다...

지난해

언론이 "노동귀족들이 데모나 한다"면서 한진중공업 노조를 맹공격할 때,

결국 노조지회장이던 김주익 위원장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 때,

정은임 아나운서가이런 방송을 했더군요...

저도 듣지 못했던

지난 해 11월달의 방송...

< 황당무개한 법으로 인해 방송녹음 원본을 삭제합니다... >

< 정은임 아나운서의 목소리에 깔리는 음악... 이것도 법에 저촉되겠죠? 너무하네... >

< 193,000원. 한 정치인에게는 한끼 식사조차 해결할 수 없는 터무니없이 적은 돈입니다.

하지만 막걸리 한사발에 김치 한 보시기로 고단한 하루를 마무리하는 사람에게는

며칠을 버티게 하는 힘이 되는 큰 돈입니다.

그리고 한 아버지에게는요,

세상을 떠나는 마지막 길에서조차 마음에서 내려놓지 못한, 짐이었습니다.

안녕하세요. FM영화음악의 정은임입니다.

아이들에게 휠리스를 사주기로 했는데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해 정말 미안하다.

일하는 아버지, 故 김주익씨는 세상을 떠나는 순간에도 이 193,000원이 마음에 걸렸습니다.

193,000원. 인라인스케이트 세켤레 값입니다.

35m 상공에서 100여일도 혼자 꿋꿋하게 버텼지만

세 아이들에게 남긴 마지막 편지에는아픈 마음을 숨기지 못한 아버지.

그 아버지를 대신해서 남겨진 아이들에게 인라인 스케이트를 사준 사람이 있습니다.

부자도, 정치인도 아니구요 그저 평범한, 한 일하는 어머니였습니다.

유서속에 그 휠리스 대목에 목이 메인 이 분은요, 동료 노동자들과 함께 주머니를 털었습니다.

그리고 휠리스보다 덜 위험한 인라인 스케이트를 사서,

아버지를 잃은, 이 위험한 세상에 남겨진 아이들에게 건넸습니다.

2003년 늦가을. 대한민국의 노동귀족들이 사는 모습입니다. >

가진자들의 편에 서있는 보수언론의 한복판에서

외롭게 자기 목소리를 내는

몇 안되는 방송인들 중 한명이었는데...


잊고 지냈던 목소리...

다시 듣고 싶습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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